아침 해가 뜰 때

고백하자면 나는 지난 주말에 술을 마셨다. 그것도 위스키를 마셨고, 내가 산 위스키였다. 그리고 위스키를 마시다 보니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새 위스키를 마시며 “술 끊으니까 진짜 좋더라고…” 같은 소리를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하는 내 자신에게 흠칫 놀라는 순간도 있었지만, 개업하는 가게였기 때문에 뭐든 사야했다는 핑계는 있다. 어쨌든 한 순간 하늘이 밝아오는데, 비까지 오고 말았다.… Read more 아침 해가 뜰 때

달리기

글쓰는 근육은 다리에 붙어있다,는 말을 나는 진지하게 믿고있다.  모소설가는 인터뷰에서 다리를 다쳐서 매일 하던 산책을 못 하게 되자 글쓰는 리듬도 잃어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리를 못 쓰지만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분들도 글을 쓸 때는 뇌 속이 달리기 할 때와 비슷한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Read more 달리기

길을 건너야 보이는 것들

늘 다니던 카페에서 타자를 치다가 머리를 식히러 나와 길을 걸었다. 그런데 늘 걷던 쪽 인도에서 건물 하나를 부수고 있었다. 건물 부수는 데를 지나갈 수는 없으니 길을 건넜다. 그래서 나는 자주 걷던 길을 건너편 인도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서늘했고 갓 비가 그친 후였다. 카페에서는 몇 가지 생각을 했고 그간 써온 시간들과 방향들을 (또!) 수정해야겠다 마음 먹은… Read more 길을 건너야 보이는 것들

민첩성

언제나 그렇듯이 삶의 고통을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책으로 배워보려는 바보같은 취미생활을 지속하다가 ’emotional agility’ 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내용이야 뭐 천만번째 다이어트책처럼 뻔한 지혜들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얘기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문득 ‘agility’라는 말의 정확한 뜻이 궁금했다. 영문 서적을 읽을 때면 대충의 뜻을 알고 있으면 그냥 넘어가버리지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데 내가 멋대로 ‘agility’를 ‘유연성’ 정도의 느낌으로… Read more 민첩성

아쉬탕가 요가

어느날 문득 우리 세대의 평균수명이 100세가 넘는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장래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중 하나가 십 년마다 외국어 하나씩 마스터하기다. 100살까지 살면 십 년마다 외국어를 하나씩만 배워도 6개는 더 배울 수 있다. 맙소사. 원대한 포부가 하나 더 생겼는데, 아쉬탕가 요가를 배우는 것? 아래 영상이 궁극의 목표. 너무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홀린듯 보게된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Read more 아쉬탕가 요가

미래 원시인

  정박사는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드디어 22세기로 갔다. 하지만 오류가 있었는지 구석기 시대로 가고 말았다. 기원전 2만년 정도에 도착한 것이 틀림없었다. 타임머신은 북아메리카로 추정되는 숲 한가운데 떨어졌다. 위쪽 언덕에 커다란 동굴이 보였다. 잠시후에 머리를 산발한 인류 3명이 동굴 속에서 나왔다. 1명은 남자였고 2명은 여자였는데 그들은 아랫도리에만 낡은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여자들은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낡은… Read more 미래 원시인

목소리의 진심

내 직장은 카페이다. 5년째 이 일을 하고있다. 늘 그렇듯이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보면 특정 스킬이 올라간다. 나는 계량기 없이도 우유를 정확히 200ml 따를 수 있고, 손목을 날렵하게 돌려가며 드립포트의 물줄기를 잘 조절할 수 있고, 커피향과 맛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건 일상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스킬이고, 그보다는 의외의 스킬을 하나 습득하게 되었는데… Read more 목소리의 진심

세계의 한 구석을 점유하다가 가는 일

이렇게 날씨가 좋은 주간엔 그냥 길을 걸으면서도 기분이 묘할 때가 있다. 봄이 시작되던 즈음에 상수와 합정 근처를 걸으면서 들었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그때 느낀 건 그 홍대 주변 구역이 갖는 삶의 어떤 시기와 결부되는 특수성 같은 것들이었다. 그 동네는 누구에게나 좀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문화적으로 더 세련된 서울 동네가 홈타운이든, 지방이… Read more 세계의 한 구석을 점유하다가 가는 일

Homo manducans cerebro

늘 궁금하다. 지구위에서 왜 인류만 이렇게 번성했을까? 누군가는 지구 최후의 승자는 인류가 아니라 바퀴벌레이거나 옥수수이고, 인류는 옥수수와 바퀴벌레의 생존을 돕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누가 최후의 승자인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판결이 날 것 같고(100년 안에 판결이 날 것 같다. 스티븐 호킹은 100년 이내에 지구가 망할 것을 단언했다고 한다.) 일단은 무엇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었는지,… Read more Homo manducans cerebro

몸의 최적화

일전에 쓴 것처럼 새벽의 현자타임이 시작된 것은 내 인생의 위기가 찾아온 시기와 겹친다. 물론 인생이야 늘 위기였지만 이번엔 특히나 위기였는데 왜냐면 예전에는 위기가 찾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애인한테 차였다던가, 통장 잔고가 떨어져 고양이를 데리고 본가에 들어갔는데 값비싼 쇼파를 다 뜯어놓았다던가, 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회사가 합병되더니 세 달째부터 임금이 체불되었다던가. 원인이 뚜렷한 위기는… Read more 몸의 최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