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의 원천

그 어느 때보다 같은 인간으로서 갖는 유사함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성에 대한 옹호가 ‘철’이 지난 건 아닐까 같은 생각들도 종종 한다. 때때로 경멸에 찬 지성인들이 새 시대의 무지함을 벌레보듯 깔보는, 오만이 넘치는 프라이드가 느껴질 땐 나도 모르게 몸서리친다. 그들이 갖는 자기 확신은 객관화가 결여된 자기 확신이다. 뭔가를 깔보려면 확실한 우위가 있어야 하는데, 현 시대의 휴머니즘은 힘도, 권위도, 설득력도 없다. 이미 칼자루는 자본 절대주의자들과 그들의 쌍둥이 같은 테러리스트들이 쥐고 있는데 그들을 향해 ‘천박한 것들…’ 거리면서 비웃을 여유가 정말로 있는지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독이 되는 프라이드는 ‘우월주의’에 기반한 프라이드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 그 상태로 ‘확신’에 차는 게 제일 끔찍하다. 나는 그랬던 적이 많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쪽팔리는 짓거리인지 안다.

여러모로 ‘회의’를 최우선의 방법론으로 삼는 철학의 기류에는 지혜가 있다.

다만 회의의 방법론에 빠져들면 냉소에 피가 빨리는 수가 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우리는 진실과 가치를 감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루 버티고 하루 사는 것을 넘어서는 동력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찾은 프라이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된다.

그럼에도 종종 나는 프라이드를 가져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프라이드를 내뱉는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런 것들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다른 이들을 괴롭게 한다.

그것을 스스로 감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프라이드의 원천을 살펴보는 훈련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얻어내거나 찾아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정은 프라이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감사할 것과 자랑스러워 할 것은 서로 다르다. 자랑스러워도 되는 것들은 스스로 구해낸 것들, 일정한 노력과 모험과 탐구로 얻어낸 것들, 모든 조건과 환경이 반대로 휩쓸어 가려고 할 때 스스로 나침반을 잡고 찾아낸 것들에 한정된다. 나머지는 고마운 것, 다행스러운 것, 좋아하는 것 정도로 놔두어야지 자랑스러워해서는 안될 일이다.

세상의 단순함에 진절머리 날 때가 있다. 꽉 막힌 벽처럼 확신으로 가득찬 무지의 불바다앞에서 환멸에 빠지기 전에 믿어야 할 것은 어쩌면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일지 모르겠다.

비슷한 불안감, 비슷한 울컥함, 비슷한 숭고함.

오늘도 그런 것들을 찾아서.

 

lil’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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