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과 쾌락 그리고 부상

십일 남짓한 여름 휴가를 보냈다. 물론 휴가라는 말은 좀 무색할 수 있다. 실상은 ‘모두가 휴가를 갔기에 일상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주간’이다. 정확히 일 년 전 이 주간이 끝나던 무렵에 온 하늘이 깜깜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내 자신에게 후하게 일 년이라는 시간을 주기로 결심했었고, 마침내 그 때 설정했던 데드라인이 이렇게 돌아왔다. 좀 웃기는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고맙다.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죽겠다 생각했었다.

잘했다.

기록적인 폭염은 대부분의 자연 재해나 사고가 그렇듯 사람의 마인드를 좀 바꾸어 놓는 면이 있다. 고만고만한 불쾌지수에는 짜증이 나지만 고난이 재난으로 넘어가는 순간 인간은 놀라운 인내심과 강인함과 관대함을 뿜어내기 시작하는데 나는 언제나 이게 흥미롭다.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명백한 극기 훈련 같은 고통은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도전 정신을 부여하는 듯하다.

얼마 전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을 멎게 할 듯한 더위 속에서 친구의 집 아파트 놀이터에서 우리의 자녀들의 뒤를 뛰어다니면서 15년 전에 우리가 하고 있던 모양과 빼다박은 웃음기 섞인 한숨을 쉬었다. 욕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교육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아이들의 목욕 당번을 맡았고, 나는 둘째를 갓 출산한 그의 아내와 소파에 앉아 우리의 삶을 빼앗는 것들의 실체의 하찮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눈가에 깃든 실망과 괴로움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안다.

재미있게도 그날 나는 또 뭔가를 깨달았다.

우리는 이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실망을, 이 하찮음을, 이 괴로움을. 그건 손님에게도 소셜 미디어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는 집 안의 어두운, 청소 용구와 철제 행거와 플라스틱 수납장 같은 것들이 난무하는 뒷방 같은 거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뒷방.

그랬다.

친구와 그의 남편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그런 얘기를 했다. 이제는 가장 화려한 도시의 가장 화려한 식당에 간다 해도 무슨 음식을 먹으러 간다 해도 설레이지는 않는다는 거. 심플한 쾌락의 보상이 주어지는 활동들은 이제 아무리 좋아도 거의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들어 버린다. 물론 새롭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각이 나온다. 음식, 연애, 공간, 사람…

그러므로 심플한 쾌락은 아무런 동력이 되지 못한다. (구) 홍상수처럼 무한히 심플한 쾌락을 재생산하면서 살아가는 방법도 있겠으나 미봉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볼 것은 쌓아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성취 뿐이다.

뭐 이런 소리들을 하고.

며칠 후엔 벌레 소리 가득한 밤 바람이 부는, 친구네 주택 테라스에 앉아 반달도 보름달도 아닌 달 앞으로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고 있었다. 부서진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딱 바로 그 재난 앞에서 강해져야만 하는 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잘은 모르겠지만 혹독한 지역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전쟁 베테랑의 얼굴들에 보이는 것 같은 표정이 있다.

흔히들 말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심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부딪혀 보았으며 거기서 살아나가는 법을 체득하는 것.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같은 거랄까. 아마추어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날 때 놀라고 분노한다. 프로페셔널은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사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은 프로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제는 좀 그런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부상 입은 곳을 붕대로 칭칭 감고 경기에 임하는 운동 선수들처럼, 이 게임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다 낫는 일은 없다는 걸 아는 채로 말이다.

 

lil’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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