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쉬라고 있는 계절

매일 새벽이나 아침에 폭염주의 재난 경보 알림을 받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얄밉기도 하지만 티비에서 라이브로 후쿠시마 쓰나미를 본 사람으로서는 재난 경보라면 그 정도는 울려야지, 생각한다.

agility 와 비슷한 의미로 얼마전에 부딪힌 단어가 resilience 였다. 탄력성, 회복성이라는 뜻인데 저 두 가지가 인생을 버팀에서 있어서 strength 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무한한 힘을 동경하는 요즘 같은 시즌에 좀 인상적이다.

유난히 곱상(?)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던 어제는, 운전 실수를 빌미로 길에서 중년의 여자 둘에게 시비 털리는 일이 있었다. 사실상 그들은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고, 나 또한 화가 나서 되받아쳤지만 이미 목소리에서 게임이 안된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 나는 화를 낼 줄 모른다. 또는 ‘이기는 화’를 낼 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싸움 아니고 논쟁 아닌 이상한 시비를 대충 정리하는데 어린애처럼 불쑥 눈물이 솟았다. 어린애처럼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건, 나의 표정이고 뭐고 딱 세 살 짜리 애들이 감정 조절 못한 어른에게 혼나고 놀란 다음에 참다 참다 터뜨리는 눈물의 모양새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양으로 얼굴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시비 털던 그 아줌마는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어른과 똑같은 모양으로 당황하고 나를 달래(?) 주었다.

다 큰 여자가 싸우다 우는 건 다 큰 남자가 싸우다 우는 것 이상으로 자존심 상하고 쪽팔리는 일이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으며 나는 내 허여멀건한 얼굴이 얼마나 천진해 보이는지를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곰곰히 나를 울린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이십대 초반에 나처럼 허여멀건한 남자친구와 해운대를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사창가 앞을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업소 문 앞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아주 적대적인 표정으로 “데이트는 딴 데 가서 해라.” 라고, 목소리 쫙 깔고 말해서 무서웠던 기억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해운대 여자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엔 상대를 봐가면서 거는 시비라는 게 싫었고, 무슨 굉장한 불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얼굴로 사실은 다른 복수심을 나에게 풀고 있다는 게 싫었다. 그냥 그 짧은 순간을 즐기는 게 너무 뻔했다. 내가 눈물을 흘렸을 때 그 여자는 만족감을 표정에서 숨기지 못했다.

그런 류의 표정들을 볼 때 경멸을 하지 않으려 정말 정말 노력한다.

표정에는 계열이라는 게 있다. 그 여자가 지은 표정은 예를 들어 나치가 유태인들을 잡아갈 때 동네 사람들이 지었을 것 같은 계열의 표정이었다. 혹은 간음하다 걸린 여자를 화형할 때 구경꾼들이 지었을 것 같은 계열의 표정.

커뮤니티를 위협하는 더위다.

 

lil’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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