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목욕탕의 규칙

얼마 전에 권유로 찜질방이라는 델 갔다. 몇 번을 다시 만나도 적응 안되는 공간이 있으니 그게 바로 락커룸이다. 그 락커룸이라는 경계를 넘으면 사람들이 태평하게 나체로 걸어다닌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길 위에서는 걱정스럽게 쫓아와서는 “저기요, 옷 사이로 속옷이 너무 비치네요, 정말. 너무 비쳐요.” 따위 말을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아무것도 잘못 된 게 없다는 듯이 맨몸으로 걸어다니고 있으니 이게 낯설지 않겠냔 말이다. 혹은 바로 이 점이 거리의 규칙의 인위성을 증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약속만 잘 되어 있다면 성기든 뱃살이든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할 수 있는 인간들이 고작 옷 사이로 비치는 팬티 라인이나 브라를 하지 않은 젖꼭지 따위에 뇌손상이라도 입은 듯 피해를 호소가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나체의 인간이 불쑥 그렇게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살면서 쉽게 볼 일이 없는 타인들의 몸에 대한 호기심으로 곁눈질을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몸은 정말 다르게 생겼다. 내게는 익숙한 좁은 상체와 커다란 힙, 장대한 허벅지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낯선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찜질방의 공중 목욕탕을 돌아다녔다.

인간이 이 우스움을 이해하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규칙의 우스움을, 허접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근본주의자가 된다고 했다. 삶의 카오스를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그곳에서는 간음을 하면 돌로 쳐 맞아 죽고 호기심을 지닌 자는 손목이 잘린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축구 경기장에 알몸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을 공권력은 잡아들여야겠지만 우리는 그를 보고 반가워하며 웃는다. 나는 그 인간들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권위라는 것의 근본적 우스꽝스러움을 잊지 말자는 신성한 의식 같은 것.

어쩌면 우리의 셀룰라이트와 뱃살과 늘어진 성기 같은 것을 까고 다닌다면 세상이 좀 더 투명할수도 있지 않을까? 계급과 옷차림과 스타일 같은 것을 벗어던지면, 건장한 놈이 아름답고, 섹시한 놈이 섹시하고, 늙은 놈은 늙었고, 모두가 그런 사실들에 대해 좀 더 평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을 잠깐 해 보았다.

그런데 역시 아무래도 인류가 그럴 깜냥은 아닌 것 같습니다.

 

lil’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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