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어떤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곧 죽겠다는 느낌을 받았던 일요일, 그간 몇 번을 생각만 하고 해보지 못했던 일, 아무도 없는 곳으로 짐을 싸들고 숨어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만히 있으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그 사이클로부터 어떻게든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행위의 당위성에 대한 당당함을 확보하지 못해 늘 생각만 하고 말았던.

월요일엔 한적한 해변에 와 있었다.

의심이 우스워질만큼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영혼이 낫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거 하나를 못하다니. 나는 무엇을 그토록 겁내고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말들의 감옥에 왜 스스로를 가두는지.

이곳은 아주 긴 해변이 죽 늘어서 있는 곳이다. 창문을 열면 테라스 너머로 그 해변이 있고, 낮이고 밤이고 파도소리가 들린다. 그 파도소리를 듣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는 해변이다. 그런데 그 파도소리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마치 한남대교를 건너는 차들처럼 멈추는 법이 없는 어떤 풍경.

이 파도는 언제부터 치던 파도일까. 언제부터 이 해변에서는 이 소리가 났을까, 같은 생각들을 하며 테라스에 앉아 파도를 구경했다.

수심이 얕은 이곳의 파도는 아주 얇은 흰색의 거품을 만들며 해변의 한쪽에서 한쪽으로 이동하듯 부서진다. 일렁이는 물살이 해변을 향해 다가오다가 내가 바라보는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부서지면서 여행을 시작하면 쪼르르르 그 모양이 왼쪽으로 이동하고, 그때 쯤이면 다음 파도가 오른쪽 끝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한다. 어떤 파도는 좀 더 높아서 아주 약간 좀 더 큰 낙폭으로 부서지고, 어떤 파도는 매우 얕아서 얇은 선처럼 부서진다.

나의 이 삶이라는 게 어찌보면 저 파도에 불과하겠지. 지구에 바다가 생긴 이후부터 계속해서 10초에 한 번씩 부서져온 저 파도들 중 하나의 여정 같은 거겠지.

뭐 이따위 가짜 뉴웨이브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새로운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잠깐 그렇게 앉아 있으려니 또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시니컬해하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봤다. 무슨 악몽에서 깬 거마냥, 우스워 보이더라. 내 머리속이 만든 서사들, 드라마들의 비좁음이 너무도 자명하게 느껴져서 창피했다. 정말이지 한심한 바보짓거리들이로군, 생각했다.

몇 초 안에 부서지는 파도 주제에, 니가 그랬단 말이지. 지금 너는 오른쪽 해변에서 왼쪽 해변을 가는 저 짧은 순간 동안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거리고 있는 거라고. 이 바보 같은 파도야. 지금이 다야. 이 밤이 다야.

lil’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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