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페이지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아침에 일어나 무엇이든 좋으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 문단 적고 치우는 ‘모닝 페이지’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하면 운동 전에 하는 스트레칭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매체에 기록되는 형태의 인터뷰 또는 퍼포먼스를 할 때 초반 5분 정도는 연습 타임으로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모닝 페이지를 괜히 한 번 열어본다. 오늘 아침에 처음 떠올랐던 말은, 사람은 생각해야 할 때는 빡세게 생각을 해야만 하고 생각을 안해야 할 때는 반드시 생각을 안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생각을 안해야 할 때는 빡세게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야 할 때는 생각을 안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몸이 고통의 반대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다 보면 고통스러워지듯.

결국 생각이라는 게 똑바로 돌아가는 순간은 욕망 또는 열망이 존재하는 순간일까 생각했다.

열망의 순간에는 뇌가 투명해지고 한없이 집중력도 능력치도 올라간다. 그것을 운동 선수들이 zone 이라 부른다고 했던가. 골을 넣어야 하는 순간 시간도 다르게 흐르고 눈에 보이는 것도 다르고 몸에 대한 컨트롤도 달라진다고.

나의 경우 그 zone을 느꼈던 건 계곡에서 미끄러졌던 어느 봄 날이었다. 계곡 물이 흐르는 지리산 산자락의 돌과 돌 사이를 넘어다니고 있었는데, 작은 폭포 같은 것이 흘러내려 굉장히 속이 깊은 호수 같은 데로 연결되는 그런 지점에 내가 서 있었다. 무슨 계산에서인지 나는 그 작은 폭포를 충분히 건너 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점프를 했는데, 그때 그 느낌이 왔다.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 감각이 분절되는 느낌. 두 발이 공중에 뜨는 그 순간 내가 잘못 계산했다는 걸 알았고, 내가 원했던 지점에 착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의식의 양상이 달라졌다. 발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 지점은 그 작은 폭포의 중간 쯔음이었다. 나는 미끄러졌고, 곧장 아래쪽을 향해 빨려 내려가는 느낌을 받으며, 앞서 가던 친구에게 절박한 얼굴로 손을 쭉 뻗었다. 그의 이름을 불렀는지 어쨌든지는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다행히 덩치 큰 그 사람이 내가 내민 그 손을 잡았고, 나는 물에 빠지지 않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 순간 존은 끝났지만 무슨 동영상 고속 촬영의 속도 조절 키프레임이라도 건드린 듯 시간이 늘어지던 경험만은 꽤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계곡의 그런 지점들은 ‘소’라고 불리우는, 수심이 깊고 물살이 강해서, 심해 생물처럼 생긴 이상한 생물들도 사는 그런 곳이라고 했다. 본능적 공포가 일깨운 감각이 있었을 것이다. 교통사고가 날 때 그런다고 했다. 트럭이 나를 향해 돌진하거나 차가 어디에 부딪히기 직전 그것을 알아차리는 찰나의 찰나. 몸을 어떻게 접어야겠다 핸들을 꺾어야겠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흔히 말하는 ‘주마등’처럼 눈 앞에 인생이 지나간다고.

여하튼 이게 오늘의 모닝 페이지다. 주마등같은 존. 환상 속의 유니콘 같은 그 존재. 6월이 끝날 무렵이면 사방에서 우울증 환자가 속출할 것이라 예견했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게 터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약간은 죽고 싶었다. 이게 인생의 새로운 점이다. 이제는 남들이 말하는 그 기분이 뭔지 어렴풋이 알겠다. 그것은 미래가 안 보일 때 드는 계통의 감정이다. 그런데 나는 그 감정의 특징을 기록하고 있으니 정말로 죽고 싶은 건 아닐꺼다.

괴로워하는 그에게 그럼 우리 무덤을 파고 관뚜껑 열고 기어들어갈까? 그런 농담을 했다.

이 날씨에 무덤을 파다보면 귀찮고 힘들고 고되어서 짬뽕밥 같은 걸 시켜먹고 싶어지게 될 걸.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진짜 맛있을 거야.

 

lil’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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