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생긴 알러지반응 같은 걸로 얼굴이 간지러웠고, 주말에 마신 술 탓인지 또 마법처럼 세상이 시시하고 살아 무엇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만날 사람도 없으면서 억지로 기분을 내보려고 쓸데없이 허리에 달라붙는 민소매 검정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하였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뻔하게 흘러가는 참극이다. 삶의 근원적 불안을 알코올이 제공하는 일시적 쾌락으로 무마시키려 하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기분을 뭔가 성적인 것으로 물리쳐보려는 짓거리.

그런데 그게 또 무슨 대단한 차림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뭐 어디가 노출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허리가 좀 붙는다 뿐이다. 다만 내가 그런 옷을 입고 있을 때면 묘한 성적인 힘 같은 게 생긴다는 것 정도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생기가 떨어지는 오늘 같은 날 그 힘을 좀 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있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살을 빼라는 암묵적인 자극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던 점도 크다. 허리를 올바르게 펴는 데 있어서 펑퍼짐한 아랫배가 드러나는 차림만큼 좋은 각성제는 없다.

아무튼 그러고서 어딜 갔냐면 동네 김밥집을 갔다.

동네 김밥집 메뉴판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가 먹고 싶었던 오징어덮밥만 7,000원으로 다른 메뉴들보다 천원이나 비쌌다. 나는 마취총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아주 오랜 시간을 그 오징어덮밥의 가격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제육덮밥도 아니고 김치볶음밥도 아닌 오징어덮밥인데 왜 고급 재료도 아닌 오징어를 이용한 덮밥만 천원이 더 비싼가. 저 메뉴의 속뜻은 ‘오징어덮밥은 시키지 마시오’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제육덮밥을 시키자니 그건 도저히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왜 저것만 천원이 비싸냐 어쩌냐 같은 소리를 좀 하다가 오징어덮밥을 시켰다.

김밥집에는 일하는 아줌마 두 사람과 나, 그리고 혼자 와서 된장찌개를 먹던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육체 노동 계통에 종사할 것 같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단골인 듯했다. 남자는 나를 힐끔 돌아보는 듯하더니, 뜬금없이 식당 아줌마들에게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누라를 좀 패야 되는데. 내가 여행 갔다오니까 마누라가 이상하대. 오빠, 맨날 맞다가 안 맞으니까 이상해. 맞을 때가 됐나. 이러는 거야.”

뭐 이런 소리였다.

본능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식당의 두 아줌마들은 약간은 히스테릭하게 웃으면서 “에이, 말은 그렇게 해도 꽉 잡혀 살면서 뭘 그래” 같은 식의 대꾸를 했다.

당장 일어나서 그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뒷모습만으로도 튼튼한 체격의 사람이었고, 본능적으로 시비를 걸어선 안될 것 같은 기운을 온 몸으로 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 남자는 허세라도 부리듯 “내가 감옥 갔다와서 그래. 늙은 아줌마 뒤에서 끌어안다가 감옥 갔잖아. 아줌마들도 조심해.” 이런 말들을 웃으면서 했다. 식당 아줌마들은 그 말에 웃었다. 몹시 불편했다. 그 남자는 그러고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일어섰다. 아줌마들은 아주 친절하게 “네, 또 오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뜩 긴장을 했다.

남자가 식당을 떠나는 순간 두 아줌마의 표정은 나의 표정과 같아졌다. 극심한 불쾌감.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힘의 위협 앞에서 꼼짝하지 못한 자의 불쾌감. 그리고 나도 그것을 느꼈다. 그 남자는 여자 셋이 있는 공간에서 굳이 그 말을 하고 거기에 웃어줄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을 즐긴 것이리라.

그리고 그 작은 쇼는 나, 허연 얼굴을 하고 밀착되는 옷을 입고 앉아 혼자 오징어덮밥을 시키는 나라는 관객을 향한 것임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그것이 기분 좀 좋아보려고 야한 옷을 입고 출근한 내가 겪은 상황이었다. 맞아, 이런 덫이었지. 이런 덫이 있어서 죽은 사람처럼 중성화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 중성적인 삶에는 아무런 재미도 욕망도 없지. 재미와 욕망을 조금 찾아보면 또 어디선가 귀신처럼 그 취약함을 눈치채고 폭력을 들고 찾아오지.

내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기만 했더라도, 나는 좀 더 용기를 내어 ‘아이 씨발…’ 같은 욕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차림새가 만드는 어떤 취약함으로 인해 나는 경멸보다는 근거리에 저런 인간이 있다는 공포에 입각한 행동 패턴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웠다.

그 이상한 점심 때문에 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가 어떻게 되어도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타란티노의 영화 ‘장고’의 새뮤엘 잭슨처럼 사는 것은 과연 경멸스러운 일인가? 라는 생각까지 했다.

‘약함’은 어떤 본능적인 경멸감 또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 같다. 영화의 관객들을 보라. 그들은 지나치게 약한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자의 울부짖음은 그래서 묘한 선을 타야 한다. 연민을 느낄 정도의 약함을 보여줘야 마음을 붙잡지만, 경멸을 느낄 정도의 약함을 보여주면 관객은 고개를 돌려버린다.

모든 게 다 가슴을 차갑게 식히는 것들이다. 우리가 그저그런 동물들이 불과하다는 느낌.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너희가 믿는 것들 모두 거짓이고 위선이고 나이브한 소리라고 누가 귀 옆에다 대고 기분 나쁜 목소리로 지껄이는 것만 같다.

내게 힘이 있다면. 물리적인 힘이 있다면. 저 남자의 팔목을 꺾어 바닥에 눕히고 등을 밟고 서서 나즈막히 ‘한번만 더 그런 말 하면 죽여버린다’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내겐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영혼을 지키는 게 되는지 따위를 고민해야 한다.

힘을 갖고 싶다. 정말이고, 진심이다. 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lil’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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