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진심

내 직장은 카페이다. 5년째 이 일을 하고있다. 늘 그렇듯이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보면 특정 스킬이 올라간다. 나는 계량기 없이도 우유를 정확히 200ml 따를 수 있고, 손목을 날렵하게 돌려가며 드립포트의 물줄기를 잘 조절할 수 있고, 커피향과 맛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건 일상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스킬이고, 그보다는 의외의 스킬을 하나 습득하게 되었는데 목소리의 톤과 억양만 듣고도 대화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루종일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리는 곳에서 대화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생긴 능력이다.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쯤 귀를 닫고 일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발화의 톤과 억양에 모두 들어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용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면서 호감을 은근하게 드러내려는 사람, 회의하는 중에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아뭉개려고 애쓰려는 사람,  억울한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 앞에 앉아있는 사람과 같이 있는게 그저 기쁜 사람, 자신을 부풀려서 과시하는 사람. 그 내용들은 형식에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내용은 언제나 부연설명일 뿐이다. 그럴때마다 언제나 진실을 눈앞에서 목도하며 침묵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때로는 “그 사람, 사기치고 있어요. 당장 도망쳐요.”라고 외치고 싶다.

지난 주에는 친한 직장 동료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 손님이 왔다. 내가 음료를 서빙할 때 남자분은 여자분에게 경쾌한 목소리로 “그래서 그 사람이랑 사귈거야?”라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목소리의 진심> 테스트 결과로는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호감이 있고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달려가서 “그냥 둘이 사귀어요!”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카페에서 가장 부러운 손님은 거의 아무 대화가 없는 커플이다. 대개의 경우 대화의 양과 친밀도는 반비례한다. 그들은 대화도 없고 그런 까닭에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둘은 그 순간에도 둘만이 아는 각종 몸의 언어로 수만가지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대화가 없어도 편한 관계가 좋은 관계라는 말은 어느정도는 진실이다. 어쩌면 동물들은 이미 알고있는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아무런 대화없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이미 알고있다. 인간들은 동물이 진화가 덜 되어 언어가 없다고 폄하해왔지만, 그들은 억양에 모든 것을 담아 전하고 그즉시 모든 것을 이해해왔을지도 모른다. 30억년 동안. 10만년 동안 인류가 언어로 서로를 속이고 마음을 감추는 동안.

 

-Risk

2 thoughts on “목소리의 진심

  1. “그 사람, 사기치고 있어요” 냅킨에 적어서 은밀하게 쓰윽 건네는 상상을.

    1. 조만간에 시도해야겠어요.
      “그 사람이랑 당장 헤어져”를 건네고 싶은 때도 셀 수없이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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