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 구석을 점유하다가 가는 일

이렇게 날씨가 좋은 주간엔 그냥 길을 걸으면서도 기분이 묘할 때가 있다. 봄이 시작되던 즈음에 상수와 합정 근처를 걸으면서 들었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그때 느낀 건 그 홍대 주변 구역이 갖는 삶의 어떤 시기와 결부되는 특수성 같은 것들이었다.

그 동네는 누구에게나 좀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문화적으로 더 세련된 서울 동네가 홈타운이든, 지방이 홈타운이든, 대학을 다녔든 바로 사회로 나섰든, 많은 이들에게는 처음으로 자신이 자연적으로 소속된 집단 밖의 문화적 호기심으로 기웃거리게 되는 동네. 처음으로 가게들이 전부 문 닫은 ‘새벽’을 맞이하게 되는 동네.

물론 일반화이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그랬다. 밤이나 새벽이 생각나고, 특히 어딘가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같은 것들부터 떠오르는.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묘하게 촌스러운 동네. 도시의 진짜 주인이 아닌 이들이 욕망으로 세운 또 다른 작은 도시같은 느낌이어서, 서울 사람인 나에게는 또 결코 서울같지 않은 그런 동네를 걸으며, 음식에 특성이 없는 무슨무슨 포차 같은 술집들, 식당들, 어중간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쇼룸들, 어중간한 디저트집들, 이런 것들을 스쳐 걷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이게 다구나. 이렇게 어떤 공간을 점유하며 또 우연찮게 연을 맺은 사람들 얼굴을 보며, 우연찮게 흘러들어간 어떤 계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는 거겠구나. 그 인연들이 무엇었나에 따라, 아이보리 벽에 나무선반, 그리고 식물이 주렁주렁 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과, 그래피티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검은 벽에 후레시 터뜨리는 인스타그램 계정, 핑크빛 볼을 하고 일자 눈썹에 동그란 눈을 하고 사진을 찍는 계정과, 풍덩한 아노락을 올려 잠그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계정을 점유한 채 살아가는 거겠지. 그런데 희한하게 인간이 동물은 동물이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인간이 동물은 동물이구나. 점박이 무늬의 극락조를 북극에 데려다 놓으면 찐따같겠지. 북극 여우를 아마존에 데려다놓으면 초라하겠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어쨌든 살면서 이래저래 인연 맺는 사람과 문화와 유전자들이 빚어내는 어떤 현상에 불과하겠지. 그러니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고 관계맺고 점유하고 있는 세계의 이 구석들을 소중히 하고, 이 시간들을 온전히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게 다일 테니까.

 

lil’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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