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최적화

일전에 쓴 것처럼 새벽의 현자타임이 시작된 것은 내 인생의 위기가 찾아온 시기와 겹친다. 물론 인생이야 늘 위기였지만 이번엔 특히나 위기였는데 왜냐면 예전에는 위기가 찾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애인한테 차였다던가, 통장 잔고가 떨어져 고양이를 데리고 본가에 들어갔는데 값비싼 쇼파를 다 뜯어놓았다던가, 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회사가 합병되더니 세 달째부터 임금이 체불되었다던가. 원인이 뚜렷한 위기는 해결방법도 뚜렷하다. 진지하게 스스로를 성찰하여 애인한테 차이는 게 당연했다는 걸 스스로 납득하던가, 고양이한테 제발 집에서 안 쫓겨나게 도와달라고 싹싹 빌던가, 고용노동부를 찾아가면 해결되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있었다. 최고로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런데도 위기가 찾아왔다. 원인을 모르니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새벽마다 이유없이 깨어나기를 몇 달 쯤 한 뒤, 간신히 한 가지 이유 비스무레한 것을 찾았는데 그것은 ‘노화’다. 굳이 따지자면 태어나면서부터 쭉 늙어왔지만, 요 몇 달은 달랐다. 몸이 늙어지는 속도가 갑자기 확 올라갔다. 그래서 몸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아닐까. 가속되는 노화의 지표는 여러군데 있었다. 그것이 원인인 것이 확실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하는 게 옳겠지만 하필 원인이 인류 최대의 난제이니 일단은 겸손하게 물러나서 해결을 포기했다. 대신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몸관리 라는 과목을 유치원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집안의 유전 내력 및 생활습관에 따라 각자의 몸은 너무도 다르고 관리 방법도 다르다. 각자 맞는 몸관리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나라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안은 가족력이 있다고 말해지는 많은 병들이 몰려있어서 교과서에 써도 될 정도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할아버지는 파킨슨병과 췌장암으로, 외할아버지는 위암으로, 큰외삼촌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둘째 외삼촌은 신장이식을 하셨고, 큰고모는 뇌출혈로 수술을 하셨고, 엄마는 당뇨가 있으시고 하지정맥류와 자궁근종으로 인한 자궁적출술과 관절염 수술을 받으셨고, 아빠는 척추결핵 수술과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으셨다.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혈압약과 당뇨약을 먹고있다. 반면에 나의 절친 중 한 명네 가족은 모두가 너무나 건강해서 그 집안의 유일한 사망원인은 알콜중독이라고 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병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면 자연히 어려서부터 나름의 몸 관리 비법을 찾아내게 된다. 필사적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음식을 가린다. 나의 사촌동생중 한 명은 식사중에도 운동을 한다. 한 바퀴 거실을 뛰고 와서 고기를 먹고 또 한 바퀴 뛰고오곤 했다. 소화가 잘 되야 많이 먹을 수 있다나.

암튼 그래서 노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때 나는 암담함을 느꼈는데, 왜냐면 노화가 가속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나름의 최적화를 시작한다. 출력을 바꾸려면 입력되는 것을 바꿔야하니까. 담배를 끊거나, 술을 줄이거나…하지만 이미 나는 최적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담배는 일 년에 한 갑을 피우고, 술은 일 년에 소주 두 병을 마신다. 더 줄일 것이 없었다. 술을 매일 마시던 내 친구 중 한 명은 술을 끊고서 클럽에 가니 젊은이들이 다가와 치근덕거렸다고 하던데 나는 이미 끊을 술이 없다고! 이미 수도승에 가까운 삶을 살고있다고! 하지만 불공평하다고 절규해봤자 노화는 들어주지 않지. 나는 할 수 없이 나의 거의 유일한 사치품인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하루 서너 잔 마시던 커피를 끊는 걸로 삶이 달라질까?

슬프게도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커피를 끊은 다음 날부터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고, 이틀 연속 숙면을 취하자 모든 위기가 사라졌다. 새벽에 깨지 않게 되었고,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났다. 우울하지도 않았고, 집중력이 좋아졌고, 마음이 평화가 찾아왔고 너그러워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참을성이 없어지고 화를 잘 내는 게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면 몸을 기본적으로 구동하는 데만도 에너지가 모자라서 참을성, 인품 같은 사치품에 에너지를 보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요가도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20대초반에 요가를 했을 때는 그걸 왜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요가에 가서 어설프게 동작을 따라한 후에 요가 강사님이 눈을 감고 호흡을 하라고 하면서 숫자를 세는데 그 숫자를 따라 호흡을 하다가 눈물이 왈칵 났다. 갑자기 고마웠던 것이다. 누군가 불러주는 숫자에 맞춰서 숨을 쉬기만 하면 된다니. 그 시간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고. 그런 서비스를 돈 내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자본주의를 찬양했다. 노화는 그런 것이다. 돈을 들여 내가 눈감고 숨 쉬는 동안 숫자를 세어줄 사람을 찾아내서 도움이라도 받아야 화를 덜 내고 참을성이 늘어나고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걱정은 이 다음에 찾아올 또다른 위기다. 그때는 무엇을 줄여 최적화를 해야하나? 저녁? 고기? 아마 그래야하겠지. 젊을 때 좀 더 막 살았다면 끊을 수 있는게 더 늘어났을텐데. 약간 후회한다.

 

-Ri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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