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현자타임

오늘도 나는 새벽에 깨어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심한 불면증 환자인 나는 새벽 4-5시까지 잠을 못 이룬 적은 많아도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일이 꽤 자주 있어서 그 시간에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이 시간을 일단은 새벽의 현자타임이라고 부르고 있다. 새벽의 현자타임은 반년 전쯤 갑자기 시작되었다. 갑자기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앉아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로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살아온 걸까’를 끝없이 읊조리는 것이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쥐고 심호흡을 하다가. 그러고 나서는 ’모르겠다. 이번 생도 망했다’ 하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자세로 다시 잠들어버린다.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새벽에 깨어 일어나 앉아있다가 한숨 쉬는 게 전부인 이 일과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꽤 자주 하고 있다. 오늘은 심호흡하는 대신 우.울.무.기.력.우.울.무.기.력.우.울.무.기.력.을 주문을 외듯 반복해서 말해보았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정답을 말할 때의 쾌감이 있긴 했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감정 상태는 공포에 가깝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따져보며 거슬러 오르다보니 신석기시대까지 올라갔다. 그렇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냥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서 사냥하고 과일 따 먹으며 살아야했다. 지구 위의 어떤 동물도 농사를 짓지 않는데 왜 인류는 농사 짓기를 선택 했을까. 그것이 지금의 지구를 만들었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 인류가 농사를 짓지 않았다면, 축적되는 농산물이 없었을 테고, 재산축적도 없고, 창고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높은 건물도 짓지 않았을거고. 무엇보다도 왕이 없었을 것이다. 노예도 없었을 테고, 학살도 없었을 테고, 가축으로 다른 동물들을 길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식량이 늘 모자라기는 했겠지만. 인류의 수명도 이렇게까지 불필요하게 늘지는 않았겠지. 그랬다면 잘된 일이었을 텐데. 지구한테는. 하지만 인류는 반성할 줄 모른다. 농사혁명에 대한 반성은 커녕 다른 행성까지 가서 감자 심는 영화가 히트 치는 곳이다. 지구가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리면 인류는 반성이란 걸 하게될까? 아마도 또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 땅을 갈아서 감자와 옥수수를 심을 확률이 크겠지. 지구의 일원으로서 나는 오늘도 ’모르겠다. 이번 생 망해버렸다’하고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다시 잠이 드는 수밖에 없었다.

 

-Risk

2 thoughts on “새벽의 현자타임

    1. 그건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의 정신 건강도 중요하지만 관절 건강도 중요하니까요…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