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종류와 대처법

결국 산다는 건 고통과 그에 대한 반응의 연쇄 활동이다. 뻔하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경추의 디스크가 확실하게 경화되어 정형외과 선생님으로부터 ‘이러면서 손이고 뭐고 점점 마비가 되어 버리는 거에요!’ 같은 소리를 들으며 목 통증에 관한 민간 요법적, 코어 트레이닝적, 정신과적, 신경외과적, 해부학적, 인류학적 서적을 다 뒤적이고 공중 화장실에서 뒷목 잡고 한 두 번을 토해보고, 마취제와 식염수를 배합한 주사 따위를 목 근육에 맞고 다니기 전까지는 그게 그렇게까지 단순하고 명료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알겠다. 그게 다다. 고통이라는 감각과 그에 대한 반응이 전부라는 것을. 위의 저 책들로 말하자면, 한 아저씨는 대부분의 현대적인 목통증은 해소되지 않은 유년의 트라우마(그렇다 좀 연식이 된 책이었고 프로이드 계통의 아저씨였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서 정신상담치료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쳤고, 한 아줌마는 그것이 바르지 못한 자세로 인해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본연의 사용 방식으로 근육을 쓰고 고관절을 접는 연습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으며 또 다른 아저씨는 아줌마와 유사한 자료를 제시했지만 (목과 허리통증은 놀랍게도 개발국가에서만 기하급수적으로 나타난다) 그 상관관계는 노동량이나 좌식생활 같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업화/도시화 시점에 생기는 인지의 변화와 딱 물려 드러난다고 했다.

한 책에서 꽤 설득력 있게 논거를 제시하면 다른 책에서는 또 설득력 있게 그게 아니라는 논거를 제시했다. 웃긴 건, 어쨌든 상대적인 설명밖에 안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그 해답들을 따라가며 ‘아, 이래서 그런가보다’ 라는 위안을 얻는 그 느낌이다.

이러다 보면 어르신들을 타겟으로 하는 종편의 건강 예능 같은 것들을 소비하게 되는 걸까? ‘만병은 염증 때문이다’, ‘탄수화물이 독이다’ 뭐 이런 것들?

어쨌든 그렇게 대략 팔 때까지 파보고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아 이거, 답은 없고 해결책은 더더욱 없는 영역이구나. 마치 무슨 영혼과 내세의 의미를 찾아 탐구하는 종교인들에게 죽음이 그러하듯, 목통증은 인생의 거대한 미스테리 같은 거구나. 혹은 결단코 인정하기 싫은 무엇. 노화 같은 것. 그러니 죽음을 해결할 수 없듯 목통증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겠다. 그저 그것을 빌미로 대화를 하고, 활동을 하고, 운동을 하고 그러다가 정형외과 선생님의 사나운 말마따나 마비가 되고 마는 것.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관용구인 ‘pain in the neck’ 의 정확성이라니! 역시 속담들은 대단해. 수백년을 살아남는 진정한 펀치라인들!

아무튼 대충 저렇게 정리하고 난 이후부터 문득 더 이상 목 통증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약간 싸이코처럼 섬세한 베개 취향 같은 것이 생기긴 했지만 이제는 아픔이 와도 그냥 올 놈이 왔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더 찾아볼 책도 없고,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옵션들이 무엇인지도 대충 알고.

통증의 흥미로운 점은 그게 어느 정도는 가짜라는 점이다. 몸과의 커뮤니케이션 신호 같은 거. 몸이 쉬어야 할 것 같으면 은근하지만 짜증날 정도로 신호를 줘서 다 귀찮고 자고 싶게 만들고, 몸이 빨리 피해야 될 것 같으면 찢어지는 듯한 강렬한 고통을 줘서 지금 당장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들고, 너무너무 고통과 충격이 커서 정신차리고 생존해야 할 땐 통증을 줄이기 위해 마취와 쾌락 성분을 또 쫙 뿌린다고 한다.

(아, 그래서 그 크로넨버그 영화에서 자동차 사고내면서 섹스하고 그 짓들 하는 거구나.)

그래. 그런데 사람 감정이라는 것도 통각 같아서. (FMRI 스캔 실험에 의하면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해 뇌에서 반응하는 부분이 물리적 통증에 반응하는 부분과 일치한다고 한다. 물론 어느 연구자는 FMRI 연구가 약간 과잉 신뢰를 얻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아 나 이런 거 왜 아냐고… 덕후)

여하튼 고통은 오고야 만다. 인정 사정 없이 와버리는 거다. 생일이고 발표고 뭐고 피해주지 않는다. 그 망할놈의 xxx. 정할 수 있는 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뿐이다. 그 반응이 성격이고, 사람이고,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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