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덕후

덕후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덕후의 문제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 정리의 즐거움에 빠지는 나머지 실제로 뭘 할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연유로 덕후형 인물은 같이 이야기하기에는 재미있으나 같이 일하기엔 매우 힘들다는 게 삶의 은근한 진리다. 아니 그런데 혹시 요새 내가 바로 덕후가 아닐까? 인생 덕후. 글을 쓰고 정리를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Read more 인생 덕후

뒷방과 쾌락 그리고 부상

십일 남짓한 여름 휴가를 보냈다. 물론 휴가라는 말은 좀 무색할 수 있다. 실상은 ‘모두가 휴가를 갔기에 일상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주간’이다. 정확히 일 년 전 이 주간이 끝나던 무렵에 온 하늘이 깜깜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내 자신에게 후하게 일 년이라는 시간을 주기로 결심했었고, 마침내 그 때 설정했던 데드라인이 이렇게 돌아왔다. 좀 웃기는… Read more 뒷방과 쾌락 그리고 부상

계절과 순환

해마다 유난히 올해는 더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후덥지근한 사우나 같은 공기를 뚫고 냉방병으로 인한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길을 걸었다. 이런 의문에 누군가는 94년의 기록적인 폭염 이후로 가장 더운 해가 올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94년이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 해 더웠다. 그 해는 어떤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페트병에 담긴 멸치액젓을 결명자차로… Read more 계절과 순환

성격이 나쁜 이유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은 간이 안 좋아서 자신의 성격이 나쁘다고 주장한다. 지인 중 하나는 성격 문제는 부정교합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단정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진실을 안다. 모든 문제는 고관절로부터 시작된다. 고관절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부정교합이 발생하고 턱문제가 발생하며 뒷목이 결리고, 손목에 힘이 빠지고 허리가 굽고 허벅지가 두꺼워지고, 무릎은 시리고, 발목은 접질러진다. 그… Read more 성격이 나쁜 이유

여름은 쉬라고 있는 계절

매일 새벽이나 아침에 폭염주의 재난 경보 알림을 받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얄밉기도 하지만 티비에서 라이브로 후쿠시마 쓰나미를 본 사람으로서는 재난 경보라면 그 정도는 울려야지, 생각한다. agility 와 비슷한 의미로 얼마전에 부딪힌 단어가 resilience 였다. 탄력성, 회복성이라는 뜻인데 저 두 가지가 인생을 버팀에서 있어서 strength 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무한한 힘을 동경하는 요즘 같은 시즌에… Read more 여름은 쉬라고 있는 계절

쌍욕의 효과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첫 번째 원고를 마침내 마무리했던 날 외쳤다고 한다. “Rest in peace, motherfucker.” 여기서 저 머더퍽커의 중요성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방송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여러가지 기준의 심의를 받게 마련인데, 19금 딱지가 붙는 순간 성인인증을 하고 로그인을 하거나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무한히 짜증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청불이 붙는 순간 극장 관객수는 어마어마하게 깎여나가겠지. 이러한… Read more 쌍욕의 효과

공중 목욕탕의 규칙

얼마 전에 권유로 찜질방이라는 델 갔다. 몇 번을 다시 만나도 적응 안되는 공간이 있으니 그게 바로 락커룸이다. 그 락커룸이라는 경계를 넘으면 사람들이 태평하게 나체로 걸어다닌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길 위에서는 걱정스럽게 쫓아와서는 “저기요, 옷 사이로 속옷이 너무 비치네요, 정말. 너무 비쳐요.” 따위 말을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아무것도… Read more 공중 목욕탕의 규칙

헴스트링에 쌓인 화를 풀다가

내 헴스트링에는 화가 존나 많아서 잘 안풀리는구나. 라는 크나큰 좌절을 느꼈다. 도대체 한쪽 발을 공중에 들어올리는 동작이 뭐가 그리 힘들단 말이냐. 하지만 내 몸은 벌벌 떨고 있었고 땀은 비오듯 흘러내리고 오른쪽 고관절 안에는 돌멩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답답-한 가동범위의 명백한 한계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 그 생각을 했다. 시벌 살기 위해서 하는 거다. 내가 오늘 여기서… Read more 헴스트링에 쌓인 화를 풀다가

시야와 용기

바다에서 파도를 마주하고 돌아온 주에, 무엇가가 또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시야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지, 그냥 시야의 문제일 것이다. 시야가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제는 반쯤 뻥을 얹어서 시간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고무줄처럼 늘렸다가 줄어들었다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시야라는 것도 좁아질 때는 한없이 좁아지고, 특히 고통의 순간에… Read more 시야와 용기

너의 공포를 불러내 같이 차를 마셔라

이 말이 좀 마음에 든다. 영화에서는 모든 추상적인 적을 ‘인물’화 시켜서 표현하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나의 공포를 가장 잘 상징하는 인물을 불러내 차를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은 박쥐 분장을 한 배트맨처럼 아예 그것을 둘러 갑옷처럼 입는 것은 또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lil’ pain